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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오프라 윈프리 스탠포드 연설(2008년)

by 진격의 파파 201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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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President Hennessy, and to the trustees and the faculty, to all of the parents and grandparents, to you, the Stanford graduates. Thank you for letting me share this amazing day with you.
(헤네시 총장님, 재단 이사와 학부, 전 교직원 여러분과 여기 계신 부모님과 조부모님들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 졸업생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멋진 날을 여러분과 함께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


I need to begin by letting everyone in on a little secret. The secret is that Kirby Bumpus, Stanford Class of '08, is my goddaughter. So, I was thrilled when President Hennessy asked me to be your Commencement speaker, because this is the first time I've been allowed on campus since Kirby's been here.

(먼저 저는 한 가지 비밀을 모두에게 알리고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 비밀은 제가 08년도 스탠포드 졸업생인 커비 범퍼스의 대모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헤네시 총장님이 제게 졸업식 연사를 부탁하셨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커비가 여기 다닌 이후로 제가 처음 학교에 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
 
You see, Kirby's a very smart girl. She wants people to get to know her on her own terms, she says. Not in terms of who she knows. So, she never wants anyone who's first meeting her to know that I know her and she knows me. So, when she first came to Stanford for new student orientation with her mom, I hear that they arrived and everybody was so welcoming, and somebody came up to Kirby and they said, "Ohmigod, that's Gayle King!" Because a lot of people know Gayle King as my BFF [best friend forever].

(또한 마침내 4년만에 그 애가 생활했던 방을 볼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제가 가장 있고 싶은 곳은 바로 이 스탠포드 대학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인체 생물학과 심리학 2가지 학위를 받아 졸업하는 커비가 너무 자랑스럽기 때문이죠. )
 
And so somebody comes up to Kirby, and they say, "Ohmigod, is that Gayle King?" And Kirby's like, "Uh-huh. She's my mom."
 And so the person says, "Ohmigod, does it mean, like, you know Oprah Winfrey?"
 And Kirby says, "Sort of."

(그래서 누군가가 커비에게 다가와서 저런, "저 사람 게일 킹이 아닌가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커비는 "오~오. 제 엄마가 맞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저런, 그렇다면 당신이 오프라 윈프리를 안다는 뜻인가요?" 그리고 커비는 "조금요"라고 말했습니다.)


 I said, "Sort of? You sort of know me?" Well, I have photographic proof. I have pictures which I can e-mail to you all of Kirby riding horsey with me on all fours. So, I more than sort-of know Kirby Bumpus. And I'm so happy to be here, just happy that I finally, after four years, get to see her room. There's really nowhere else I'd rather be, because I'm so proud of Kirby, who graduates today with two degrees, one in human bio and the other in psychology. Love you, Kirby Cakes! That's how well I know her. I can call her Cakes.

(저는 "조금이라니? 네가 나를 약간 안다고?"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진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커비가 저와 말타기 놀이를 하는 사진을 여러분 모두에게 이메일로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커비 범퍼스를 조금 이상으로ㅗ 압니다. 저는 여기에 온것이 너무 기쁘고 4년 만에 마침대 그녀의 방을 보게 된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저는 인류생물학과 심리학의 두 학위를 가지고 오늘 졸업하는 커비가 너무 자랑스럽기 때문에 저는 다른 어느 곳보다 이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커비 케이크, 사랑한다! 저도 그녀를 케이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And so proud of her mother and father, who helped her get through this time, and her brother, Will. I really had nothing to do with her graduating from Stanford, but every time anybody's asked me in the past couple of weeks what I was doing, I would say, "I'm getting ready to go to Stanford."

(그리고 커비의 부모님과 그녀의 오빠 윌이 그녀가 이 시간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녀가 스탠포드를 졸업하는 데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누군가 제게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어올 때마다 저는 말했습니다. “스탠포드에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
 
I just love saying "Stanford." Because the truth is, I know I would have never gotten my degree at all, 'cause I didn't go to Stanford. I went to Tennessee State University. But I never would have gotten my diploma at all, because I was supposed to graduate back in 1975, but I was short one credit. And I figured, I'm just going to forget it, 'cause, you know, I'm not going to march with my class. Because by that point, I was already on television. I'd been in television since I was 19 and a sophomore. Granted, I was the only television anchor person that had an 11 o'clock curfew doing the 10 o'clock news.
 Seriously, my dad was like, "Well, that news is over at 10:30. Be home by 11."

(스탠포드는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단어입니다. 사실 저는 학위를 절대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탠포드에 간 적이 없습니다. 저는 테네시 주립 대학에 갔습니다. 하지만 학위는 따려 하지 않았죠. 저는 1975년 졸업까지 단 한 학점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전 그것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전 친구들과 함께 졸업식 행진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 당시에 저는 이미 방송에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9살인 2학년 때부터 방송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밤 10시 뉴스를 하면서도 유일하게 11시 통금이 있는 앵커였습니다. 정말 저희 아버지는 “흠, 뉴스가 10시 반에 끝나니까 집에 11시까지 오거라.”라고 하셨습니다. )
 
But that didn't matter to me, because I was earning a living. I was on my way. So, I thought, I'm going to let this college thing go and I only had one credit short. But, my father, from that time on and for years after, was always on my case, because I did not graduate. He'd say, "Oprah Gail"—that's my middle name—"I don't know what you're gonna do without that degree." And I'd say, "But, Dad, I have my own television show."
 And he'd say, "Well, I still don't know what you're going to do without that degree."
 And I'd say, "But, Dad, now I'm a talk show host." He'd say, "I don't know how you're going to get another job without that degree."

(그러나 이건 제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으니까요. 전 이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생각했죠. 겨우 한 학점만 모자라는 건데 대학일은 그냥 잊어버리자고요. 하지만 저의 아버지는 그 뒤 몇 년 간 언제나 제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졸업을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오프라 게일- 저의 중간 이름입니다.” 하시면서 “대학교 졸업 학위 없이 네가 앞으로 뭘 할이지 모르겠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지만 아버지 전 이미 TV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요”라고 했죠.
그러자 아버지는 “흠, 난 그래도 네가 대학교 졸업장도 따지 않고 앞으로 뭘 하려는지 모르겠구나.”  제가 “하지만 아빠 저는 지금 토크쇼 진행자라고요.”라고 하면 아버지께서는 “대학교 졸업장 없이 다른 직업을 갖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라고 하셨습니다. )

 
So, in 1987, Tennessee State University invited me back to speak at their commencement. By then, I had my own show, was nationally syndicated. I'd made a movie, had been nominated for an Oscar and founded my company, Harpo. But I told them, I cannot come and give a speech unless I can earn one more credit, because my dad's still saying I'm not going to get anywhere without that degree.
(1987년 테네시 주립 대학에서는 졸업식 축사를 제게 부탁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세계적으로 방송되는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전 오스카 시상식에 후보작으로 올랐던 영화를 만들었고 제 회사 Harpo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테네시 주립대학 측에 제가 한 학점을 이수하지 않으면 그곳에 가서 연설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버지가 아직도 저에게 대학 졸업장 없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
 
So, I finished my coursework, I turned in my final paper and I got the degree. And my dad was very proud. And I know that, if anything happens, that one credit will be my salvation.
 But I also know why my dad was insisting on that diploma, because, as B. B. King put it, "The beautiful thing about learning is that nobody can take that away from you." And learning is really in the broadest sense what I want to talk about today, because your education, of course, isn't ending here. In many ways, it's only just begun.

(그래서 전 저의 대학과정을 끝마쳤습니다. 기말 페이퍼를 제출하고 학위를 따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한 학점이 저의 구세주가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전 아버지가 왜 졸업장을 따라고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유명한 재즈 뮤지션 바비 킹이 말했던 것처럼 배움의 아름다움은 아무도 그것을 빼앗지 못한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죠.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배움이라는 것은 아주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론 여러분이 받는 교육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
 
The world has so many lessons to teach you. I consider the world, this Earth, to be like a school and our life the classrooms. And sometimes here in this Planet Earth school the lessons often come dressed up as detours or roadblocks. And sometimes as full-blown crises. And the secret I've learned to getting ahead is being open to the lessons, lessons from the grandest university of all, that is, the universe itself.
(세계는 여러분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전 이 세계, 이 우주를 학교와 학급생활과 같이 생각합니다. 가끔은 이 곳 지구라는 학교에서 교훈은 우회로나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엄청난 위기로 다가올 때도 있을 겁니다. 제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배워온 비밀은 교훈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자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우주로부터의 교훈을 말이죠. )
 
It's being able to walk through life eager and open to self-improvement and that which is going to best help you evolve, 'cause that's really why we're here, to evolve as human beings. To grow into more of ourselves, always moving to the next level of understanding, the next level of compassion and growth.
 I think about one of the greatest compliments I've ever received: I interviewed with a reporter when I was first starting out in Chicago. And then many years later, I saw the same reporter. And she said to me, "You know what? You really haven't changed. You've just become more of yourself."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 나갈 수 있고 여러분을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은 여러분을 가장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고, 인간으로서 우리가 발전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진짜 이유입니다. 우리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항상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이해와 열정, 발전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제가 들었던 가장 좋은 칭찬이 생각납니다. 제가 처음 시카고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어떤 리포터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전 이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제게 하는 말이, “그거 아세요?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어요. 더 오프라다워진 것 같아요.” )

 
And that is really what we're all trying to do, become more of ourselves. And I believe that there's a lesson in almost everything that you do and every experience, and getting the lesson is how you move forward. It's how you enrich your spirit. And, trust me, I know that inner wisdom is more precious than wealth. The more you spend it, the more you gain.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점점 더 자신다워지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하는 일과 경험하는 것들 모두에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훈을 얻는 것은 여러분을 앞으로 진전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 일입니다. 전 확실히 내면의 지혜가 부를 갖는 것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혜를 쓰면 쓸수록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
 
So, today, I just want to share a few lessons—meaning three—that I've learned in my journey so far. And aren't you glad? Don't you hate it when somebody says, "I'm going to share a few," and it's 10 lessons later? And, you're like, "Listen, this is my graduation. This is not about you." So, it's only going to be three.

(자,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몇 가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인생의 여정에서 배웠던 세 가지 교훈입니다. 기쁘죠? 누군가 몇 가지 말한다고 해놓고 10가지를 말하면 싫죠? 여러분들은 이럴 겁니다. “이거보세요, 제가 졸업하는 거라고요. 당신이 아니고요.” 그래서 세 가지만 말하려고 합니다. )
 
The three lessons that have had the greatest impact on my life have to do with feelings, with failure and with finding happiness.
 A year after I left college, I was given the opportunity to co-anchor the 6 o'clock news in Baltimore, because the whole goal in the media at the time I was coming up was you try to move to larger markets. And Baltimore was a much larger market than Nashville. So, getting the 6 o'clock news co-anchor job at 22 was such a big deal. It felt like the biggest deal in the world at the time.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세 가지 교훈은 직감과 실패 그리고 행복을 찾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 대학을 떠난 지 일 년 뒤 발티모어에서 6시 뉴스 공동 앵커를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출연할 당시 방송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발티모어는 나쉬빌보다 훨씬 규모가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2살에 그곳에서 6시 공동앵커를 맡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죠.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

 
And I was so proud, because I was finally going to have my chance to be like Barbara Walters, which is who I had been trying to emulate since the start of my TV career. So, I was 22 years old, making $22,000 a year. And it's where I met my best friend, Gayle, who was an intern at the same TV station. And once we became friends, we'd say, "Ohmigod, I can't believe it! You're making $22,000 and you're only 22. Imagine when you're 40 and you're making $40,000!"

(전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마침내 바바라 월터스 앵커처럼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TV에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를 따라하려고 애썼습니다. 전 22살에 연봉 2만 2천 달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서 인턴사원이었던 지금 저의 가장 친한 친구 게일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맙소사, 믿을 수가 없어! 22살 밖에 안됐는데 2만 2천달러를 벌다니! 마흔 살이 되면 4만 달러를 번다고 상상해봐!”라고 하곤 했습니다. )


 
When I turned 40, I was so glad that didn't happen.
 So, here I am, 22, making $22,000 a year and, yet, it didn't feel right. It didn't feel right. The first sign, as President Hennessy was saying, was when they tried to change my name. The news director said to me at the time, "Nobody's going to remember Oprah. So, we want to change your name. We've come up with a name we think that people will remember and people will like. It's a friendly name: Suzie."

(제가 40살이 됐을 때 그렇게 되지 않아서 매우 기뻤습니다.
22살이었던 제가 그곳에서 한 해에 2만 2천 달러를 벌면서도 무언가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맞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헤네시 총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첫 번째 이유는 방송국에서 제 이름을 바꾸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뉴스 감독님이 제게 “아무도 오프라를 기억하지 못할거야. 그러니까 이름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사람들이 기억하고 좋아할 만한 이름을 생각했는데 친근하게 수지 어때요?”라고 하셨습니다. )


 Hi, Suzie. Very friendly. You can't be angry with Suzie. Remember Suzie. But my name wasn't Suzie. And, you know, I'd grown up not really loving my name, because when you're looking for your little name on the lunch boxes and the license plate tags, you're never going to find Oprah. 

(안녕 수지. 매우 친근하죠. 수지에겐 아무도 화를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수지를 기억할 겁니다. 하지만 제 이름은 수지가 아니었습니다. 전 자라면서 제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도시락 통이나 열쇠고리를 찾을 수는 있어도 오프라라고 쓰여 있는 것은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

So, I grew up not loving the name, but once I was asked to change it, I thought, well, it is my name and do I look like a Suzie to you? So, I thought, no, it doesn't feel right. I'm not going to change my name. And if people remember it or not, that's OK.

(그래서 전 제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라고 하니 글쎄, 이건 내 이름인데 그리고 수지가 나한테 어울릴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이건 내게 맞지 않다고 말이죠. 전 이름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았습니다. )

 
And then they said they didn't like the way I looked. This was in 1976, when your boss could call you in and say, "I don't like the way you look." Now that would be called a lawsuit, but back then they could just say, "I don't like the way you look." Which, in case some of you in the back, if you can't tell, is nothing like Barbara Walters. So, they sent me to a salon where they gave me a perm, and after a few days all my hair fell out and I had to shave my head. And then they really didn't like the way I looked. Because now I am black and bald and sitting on TV. Not a pretty picture. But even worse than being bald, I really hated, hated, hated being sent to report on other people's tragedies as a part of my daily duty, knowing that I was just expected to observe, when everything in my instinct told me that I should be doing something, I should be lending a hand.

(그리고 방송국에서는 제 외모에 대해서도 맘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1976년에 여러분의 상사가 여러분을 불러서는 “외모가 맘에 안 드는군.”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지금이라면 소송감이지만 그 당시에는 외모가 맘에 안 든다고 그냥 내뱉을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여러분들 중 몇몇이 당시로 돌아간다면 바바라 월터스와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한마디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는 저에게 미용실로 가서 파마를 하라고 했습니다. 몇일이 지나고 저는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고 머리를 아예 밀어야 했습니다. 그러자 방송국에서는 제 외모가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흑인인데다가 삭발을 하고서는 TV에 앉아있으니 썩 보기 좋진 않았겠죠.
제가 삭발을 한 것보다 더욱 싫었던 것은 제가 매일 다른 사람들의 비극적인 소식을 전달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바라만 봐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의 모든 본능은 제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의 손을 내밀어야한다고요. )

 
So, as President Hennessy said, I'd cover a fire and then I'd go back and I'd try to give the victims blankets. And I wouldn't be able to sleep at night because of all the things I was covering during the day.

(헤네시 총장님께서 말하셨듯이 저는 화재 사건을 보도하고 나서 희생자들에게 돌아가 담요를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날마다 보도하는 모든 사건들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도 없었습니다. )
 
And, meanwhile, I was trying to sit gracefully like Barbara and make myself talk like Barbara. And I thought, well, I could make a pretty goofy Barbara. And if I could figure out how to be myself, I could be a pretty good Oprah. I was trying to sound elegant like Barbara. And sometimes I didn't read my copy, because something inside me said, this should be spontaneous. So, I wanted to get the news as I was giving it to the people. So, sometimes, I wouldn't read my copy and it would be, like, six people on a pileup on I-40. Oh, my goodness.

(반면 저는 바바라 월터스 앵커처럼 우아하게 앉아서 말하려고 스스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바라를 따라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다면 훌륭한 오프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바라처럼 우아하게 발음하려고 노력했고 가끔 대본을 따라서 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내면에서 즉흥적으로 해야 한다고 소리쳤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뉴스를 사람들에게 보도하면서 저도 그 뉴스를 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가끔은 마치 머릿속 고속도로에서 6중 추돌사고가 난 듯해서 대본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맙소사. )
 
And sometimes I wouldn't read the copy—because I wanted to be spontaneous—and I'd come across a list of words I didn't know and I'd mispronounce. And one day I was reading copy and I called Canada "ca nada." And I decided, this Barbara thing's not going too well. I should try being myself.

(간혹 저는 즉흥적으로 하려고 대본대로 읽지 않고 목록에 있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잘못 발음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대본을 읽는 데 캐나다를 ‘카 나다’로 발음한 적도 있었습니다. 전 바바라를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다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
 
But at the same time, my dad was saying, "Oprah Gail, this is an opportunity of a lifetime. You better keep that job." And my boss was saying, "This is the nightly news. You're an anchor, not a social worker. Just do your job."

(당시 아버지는 제게 “오프라 게일, 이건 일생의 기회야. 이 일을 계속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상사는 “이건 메인 뉴스야. 당신은 사회 복지사가 아니라 앵커라고. 당신이 일을 전념하세요.”라고 했습니다. )
 
So, I was juggling these messages of expectation and obligation and feeling really miserable with myself. I'd go home at night and fill up my journals, 'cause I've kept a journal since I was 15—so I now have volumes of journals. So, I'd go home at night and fill up my journals about how miserable I was and frustrated. Then I'd eat my anxiety. That's where I learned that habit.

(저는 이런 기대와 의무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정말 제 스스로 처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전 집에 가서 일기를 쓰곤 했습니다. 전 15살 때부터 일기를 써왔기 때문에 지금은 일기장이 몇 권 됩니다. 전 집에서 제가 얼마나 비참하고 좌절하고 있는지를 일기장에 기록했습니다. 그리고선 제 갈망을 집어삼켰습니다. 그런 습관을 이 때 배우게 된 것이죠. )


 And after eight months, I lost that job. They said I was too emotional. I was too much. But since they didn't want to pay out the contract, they put me on a talk show in Baltimore. And the moment I sat down on that show, the moment I did, I felt like I'd come home. I realized that TV could be more than just a playground, but a platform for service, for helping other people lift their lives. And the moment I sat down, doing that talk show, it felt like breathing. It felt right. And that's where everything that followed for me began.

(8개월 뒤 저는 앵커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방송국 측에서는 제가 과도하게 감정적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위약금을 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저를 토크쇼로 배정했습니다. 그 때 그 쇼에 앉아서 저는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TV가 단순한 놀이터일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람들을 돕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앉아서 토크쇼를 진행할 때 비로소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옳다고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왔던 모든 것이 시작된 계기입니다. )

 
And I got that lesson. When you're doing the work you're meant to do, it feels right and every day is a bonus, regardless of what you're getting paid.

(그리고 저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 이것이 옳다고 느껴질 것이고 얼마를 버는지에 상관없이 하루하루가 보너스라는 것이죠. )
 
It's true. And how do you know when you're doing something right? How do you know that? It feels so. What I know now is that feelings are really your GPS system for life. When you're supposed to do something or not supposed to do something, your emotional guidance system lets you know. The trick is to learn to check your ego at the door and start checking your gut instead. Every right decision I've made—every right decision I've ever made—has come from my gut. And every wrong decision I've ever made was a result of me not listening to the greater voice of myself.

(이건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이걸 어떻게 아냐고요? 이건 느껴지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직감이 여러분들의 삶에 위치 추적 장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여러분의 감정적 안내 시스템이 판단을 하게 해줍니다. 이 방법은 시작하기 전에 자아를 확인하는 것을 배우고, 시작하고 나서는 대신에 여러분의 배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제가 내렸던 옳은 결정들은 저의 배짱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제가 했던 옳지 않은 결정들은 모두 제가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을 때 내린 것이었습니다. )
 
If it doesn't feel right, don't do it. That's the lesson. And that lesson alone will save you, my friends, a lot of grief. Even doubt means don't. This is what I've learned. There are many times when you don't know what to do. When you don't know what to do, get still, get very still, until you do know what to do.

(옳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교훈입니다. 그리고 이 교훈 하나가 여러분, 저의 친구들을 많은 슬픔으로부터 지켜줄 것입니다. 의심이 간다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배운 교훈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냥 가만히, 아주 가만히 계십시오. 여러분이 뭘 할지 알기 전까지는 말이죠. )
 

And when you do get still and let your internal motivation be the driver, not only will your personal life improve, but you will gain a competitive edge in the working world as well. Because, as Daniel Pink writes in his best-seller, A Whole New Mind, we're entering a whole new age. And he calls it the Conceptual Age, where traits that set people apart today are going to come from our hearts—right brain—as well as our heads. It's no longer just the logical, linear, rules-based thinking that matters, he says. It's also empathy and joyfulness and purpose, inner traits that have transcendent worth.

(여러분이 가만히 기다리면서 내면의 동기가 이끌어주기를 기다린다면 여러분 개인의 삶이 발전될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경쟁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 핑크의 베스트셀러 ‘새로운 세계가 온다’에 쓰여 있는 것처럼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것을 ‘관념적 시대’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서로 분류하는 특징은 우리의 마음, 우뇌와 머리로부터 오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에 말에 따르면 그것은 더 이상 논리적이지 않고 1차적이지 않으며 규칙에 지배되지 않은 시대입니다. 감정적이고 즐거우며 훌륭한 가치를 지닌 내면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These qualities bloom when we're doing what we love, when we're involving the wholeness of ourselves in our work, both our expertise and our emotion.

(이러한 성향은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자신의 일에 완전히 몰두할 때 우리의 전문성과 감정을 자라나게 합니다. )
 
So, I say to you, forget about the fast lane. If you really want to fly, just harness your power to your passion. Honor your calling. Everybody has one. Trust your heart and success will come to you.

(지름길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정말 날고 싶다면 여러분의 열정의 힘을 기르세요. 스스로의 외침에 귀 기울이세요. 모든 사람들은 하나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믿는다면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
 
So, how do I define success? Let me tell you, money's pretty nice. I'm not going to stand up here and tell you that it's not about money, 'cause money is very nice. I like money. It's good for buying things.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성공을 정의할까요? 제가 말해 드릴께요. 돈은 정말 괜찮은 것이죠. 나는 여기서 일어서지 않을거에요. 그리고 여러분에게 이것이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돈은 매우 좋은 것이니까요. 저는 돈을 좋아 합니다. 돈은 무언가를 사려 할때 매우 유용하거든요)
 
But having a lot of money does not automatically make you a successful person. What you want is money and meaning. You want your work to be meaningful. Because meaning is what brings the real richness to your life. What you really want is to be surrounded by people you trust and treasure and by people who cherish you. That's when you're really rich.

(하지만 돈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여러분이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돈과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 있는 것이길 원합니다. 의미라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 진정으로 풍요를 가져다주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신뢰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여러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주변해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부자입니다. )
 
So, lesson one, follow your feelings. If it feels right, move forward. If it doesn't feel right, don't do it.

(첫 번째 교훈은, 항상 마음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맞다’라는 느낌이 들면 밀어붙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마세요.  )
 
Now I want to talk a little bit about failings, because nobody's journey is seamless or smooth. We all stumble. We all have setbacks. If things go wrong, you hit a dead end—as you will—it's just life's way of saying time to change course. So, ask every failure—this is what I do with every failure, every crisis, every difficult time—I say, what is this here to teach me? And as soon as you get the lesson, you get to move on. If you really get the lesson, you pass and you don't have to repeat the class. If you don't get the lesson, it shows up wearing another pair of pants—or skirt—to give you some remedial work.

(자, 이제 실패에 대해 조금 말씀을 드릴게요. 그 누구의 삶도 흠집 없이 순탄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비틀거리며 고난을 맞기도 하죠. 일이 잘못되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겁니다. 그,. 그건 바로 삶의 방향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인생이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니 실패할 때마다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저는 그렇게 합니다. 모든 어려움, 고난, 힘든 시기에 저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려고 왔을까?' 라고 물어요. 그리고 교훈을 얻자마자 여러분은 발전하게 됩니다. 만약 진정한 교훈을 얻는다면 여러분은 그 고난을 이수했으며 재수강할 필요가 없어요. 만약 교훈을 얻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 나타날 거예요. 여러분에게 보충할 수 있는 숙제를 주기위해서 말이죠.  )
 
And what I've found is that difficulties come when you don't pay attention to life's whisper, because life always whispers to you first. And if you ignore the whisper, sooner or later you'll get a scream. Whatever you resist persists. But, if you ask the right question—not why is this happening, but what is this here to teach me?—it puts you in the place and space to get the lesson you need.

(또 제가 알게 된 것은, 어려움은 여러분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오며 그때 인생이 속삭입니다. 네, 인생은 당신에게 먼저 속삭입니다. 그때 여러분이 그 속삭임을 무시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외침으로 변하죠. 여러분이 저항하는 것은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옳은 질문을 하세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가 아닌 '이것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를요. 이것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그래야 당신에게 필요한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
 
My friend Eckhart Tolle, who's written this wonderful book called A New Earth that's all about letting the awareness of who you are stimulate everything that you do, he puts it like this: He says, don't react against a bad situation; merge with that situation instead. And the solution will arise from the challenge. Because surrendering yourself doesn't mean giving up; it means acting with responsibility.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의 도익에 대한 자각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지구’라는 아주 훌륭한 책을 쓴 저의 지인인 에크호트 톨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 반응하지 말고 그 상황과 함께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해결책은 도전에서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순순히 따르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
 
Many of you know that, as President Hennessy said, I started this school in Africa. And I founded the school, where I'm trying to give South African girls a shot at a future like yours—Stanford. And I spent five years making sure that school would be as beautiful as the students. I wanted every girl to feel her worth reflected in her surroundings. So, I checked every blueprint, I picked every pillow. I was looking at the grout in between the bricks. I knew every thread count of the sheets. I chose every girl from the villages, from nine provinces. And yet, last fall, I was faced with a crisis I had never anticipated. I was told that one of the dorm matrons was suspected of sexual abuse.

(헤네시 총장님이 말씀하시고 또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저는 아프리카에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저는 남아공 소녀들에게도 스탠포드와 같은 멋진 미래를 주고 싶었습니다. 학교가 학생들만큼 아름다울 수 있도록 5년이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좋은 환경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죠. 그래서 제가 직접 모든 청사진을 점검하고 베개도 직접 골랐습니다. 벽돌사이에 들어가는 메지도 살펴보았죠. 심지어 침대보가 몇 수 인지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9개의 지방에서 소녀들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저는 예상치 못한 위기와 직면했습니다. 기숙사 사감 중 한 명이 성추행 용의자라는 것이었죠. )
 
That was, as you can imagine, devastating news. First, I cried—actually, I sobbed—for about half an hour. And then I said, let's get to it; that's all you get, a half an hour. You need to focus on the now, what you need to do now. So, I contacted a child trauma specialist. I put together a team of investigators. I made sure the girls had counseling and support. And Gayle and I got on a plane and flew to South Africa.

(그것은 정말 악몽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전 그 소식을 듣자마자 30분간 흐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울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30분 동안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당시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동 전문 심리 치유 상담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조사팀을 꾸려 여학생들이 확실하게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모든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게일과 함께 남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


 
And the whole time I kept asking that question: What is this here to teach me? And, as difficult as that experience has been, I got a lot of lessons. I understand now the mistakes I made, because I had been paying attention to all of the wrong things. I'd built that school from the outside in, when what really mattered was the inside out.

(비행기 안에서 저는 계속 제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이 상황이 나에게 가르치려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런 경험은 정말 가슴 아팠지만 저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요하지 않은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이러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학교의 외부적인 것에만 신경을 썼었죠.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실을 다지는 것이었습니다. )
 

So, it's a lesson that applies to all of our lives as a whole. What matters most is what's inside. What matters most is the sense of integrity, of quality and beauty. I got that lesson. And what I know is that the girls came away with something, too. They have emerged from this more resilient and knowing that their voices have power.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이라는 이 교훈은 우리들 모든 삶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됨됨이, 삶의 질, 아름다움과 같은 가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학생들도 여기로부터 무언가를 배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일에 대처하는 힘이 생겼고 자신의 목소리가 힘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And their resilience and spirit have given me more than I could ever give to them, which leads me to my final lesson—the one about finding happiness—which we could talk about all day, but I know you have other wacky things to do.

(그 아이들이 보여준 회복력과 정신력은 제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이었고 이것이 제가 말하려고 하는 마지막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행복 찾기’입니다. 이것에 관해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여러분들에게도 다른 할 일이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Not a small topic this is, finding happiness. But in some ways I think it's the simplest of all. Gwendolyn Brooks wrote a poem for her children. It's called "Speech to the Young : Speech to the Progress-Toward." And she says at the end, "Live not for battles won. / Live not for the-end-of-the-song. / Live in the along." She's saying, like Eckhart Tolle, that you have to live for the present. You have to be in the moment. Whatever has happened to you in your past has no power over this present moment, because life is now.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작은 주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간단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웬도린 브룩스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쓴 시 ‘젊은이에게 고함 - 전진할 이에게 고함’의 마지막에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살지 말아라, 결과를 위해 살지 말라, 과정을 위해 살아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녀는 앞서 말한 에크호트 톨처럼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순간에 있어야합니다. 인생은 현재형이기 때문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현재에서 그것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
 
But I think she's also saying, be a part of something. Don't live for yourself alone. This is what I know for sure: In order to be truly happy, you must live along with and you have to stand for something larger than yourself. Because life is a reciprocal exchange. To move forward you have to give back. And to me, that is the greatest lesson of life. To be happy, you have to give something back.

(그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라는 말도 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라는 것이죠. 이것은 어려분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상호 교환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베풀어야 합니다. 저에게 이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교훈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 베풀어야합니다. )
 
I know you know that, because that's a lesson that's woven into the very fabric of this university. It's a lesson that Jane and Leland Stanford got and one they've bequeathed to you. Because all of you know the story of how this great school came to be, how the Stanfords lost their only child to typhoid at the age of 15. They had every right and they had every reason to turn their backs against the world at that time, but instead, they channeled their grief and their pain into an act of grace. Within a year of their son's death, they had made the founding grant for this great school, pledging to do for other people's children what they were not able to do for their own boy.

(이런 정신은 이미 이 대학에 뿌리 깊게 내려있기 때문에 이미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교훈은 이 대학을 설립한 스탠포드 부부가 깨달았던 것이고 또한 여러분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학교가 어떻게 설립 되었는지, 스탠포드 부부가 어떻게 해서 15살 난 외동아들을 장티푸스로 잃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당시 이들 부부는 세상에 등을 돌릴 충분한 권리와 이유가 있었지만 대신 그 슬픔과 고통을 선행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그 해에 이들 부부가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들의 자녀에게 베풀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


 
The lesson here is clear, and that is, if you're hurting, you need to help somebody ease their hurt. If you're in pain, help somebody else's pain. And when you're in a mess, you get yourself out of the mess helping somebody out of theirs. And in the process, you get to become a member of what I call the greatest fellowship of all, the sorority of compassion and the fraternity of service.

(여기서 교훈은 명확해집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주세요. 고통 받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세요.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다면 다른 사람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면서 여러분 스스로도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분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러분은 제가 말하는 ‘위대한 동반자’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봉사정신을 가진 모임이죠. )
 
The Stanfords had suffered the worst thing any mom and dad can ever endure, yet they understood that helping others is the way we help ourselves. And this wisdom is increasingly supported by scientific and sociological research. It's no longer just woo-woo soft-skills talk. There's actually a helper's high, a spiritual surge you gain from serving others. So, if you want to feel good, you have to go out and do some good.

(스탠포드 부부는 다른 부모들이 견뎌왔던 것 중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자신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는 점점 과학적, 사회적 연구가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은 더 이상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느낌을 얻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좋은 일을 하세요. )
 
But when you do good, I hope you strive for more than just the good feeling that service provides, because I know this for sure, that doing good actually makes you better. So, whatever field you choose, if you operate from the paradigm of service, I know your life will have more value and you will be happy.

(그런데 여러분이 좋은 일을 한다면 봉사를 함으로써 그것이 주는 좋은 느낌 그 이상의 것을 위해 노력하길 바랍니다. 선행은 확실히 여러분을 변화시켜주니까요. 어떤 분야를 선택하든 봉사 정신으로 임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분명 더 가치 있어질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행복해질 겁니다.  )
 
I was always happy doing my talk show, but that happiness reached a depth of fulfillment, of joy, that I really can't describe to you or measure when I stopped just being on TV and looking at TV as a job and decided to use television, to use it and not have it use me, to use it as a platform to serve my viewers. That alone changed the trajectory of my success.

(전 토크쇼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제가 단순히 TV에 출연하고 TV를 일로써 이용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청자들에게 봉사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자 그 행복은 성취와 기쁨의 깊이에 다다르고 이것은 여러분에게 설명하거나 측정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성공의 궤도가 바뀐 것이지요. )
 
So, I know this—that whether you're an actor, you offer your talent in the way that most inspires art. If you're an anatomist, you look at your gift as knowledge and service to healing. Whether you've been called, as so many of you here today getting doctorates and other degrees, to the professions of business, law, engineering, humanities, science, medicine, if you choose to offer your skills and talent in service, when you choose the paradigm of service, looking at life through that paradigm, it turns everything you do from a job into a gift. And I know you haven't spent all this time at Stanford just to go out and get a job.

(여러분이 만약 배우라면 예술에 가장 큰 영감을 줄 수 있는 배우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부학자라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지식과 봉사의 수단이라 여길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박사 학위를 받는데 경영학, 법학, 공학, 인문학, 과학, 약학 등 그 어느 분야에 있다고 해도 봉사 정신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여러분의 기술과 재능으로 이를 행한다면, 여러분의 직업은 선물로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단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스탠포드에서 이런 시간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You've been enriched in countless ways. There's no better way to make your mark on the world and to share that abundance with others. My constant prayer for myself is to be used in service for the greater good.

(여러분이야말로 정말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그 풍요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더 좋은 일에 봉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
 
So, let me end with one of my favorite quotes from Martin Luther King. Dr. King said, "Not everybody can be famous." And I don't know, but everybody today seems to want to be famous.

(이제 마지막으로 마틴 루터킹 목사의 명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야기의 끝을 맺고자 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유명해질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잘은 몰라도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 유명해지기를 원합니다. )
 
But fame is a trip. People follow you to the bathroom, listen to you pee. It's just—try to pee quietly. It doesn't matter, they come out and say, "Ohmigod, it's you. You peed."
 That's the fame trip, so I don't know if you want that.

(하지만 유명세는 짧은 여행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화장실까지 쫓아와 여러분이 아무리 조용히 소변을 보려 해도 그 소리를 듣고 ‘어머나 소변 본 사람이 당신이었군요.’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이라는 짧은 여행입니다. 이래도 여러분이 유명해지길 바랄지는 모르겠습니다. )


 So, Dr. King said, "Not everybody can be famous. But everybody can be great, because greatness is determined by service." Those of you who are history scholars may know the rest of that passage. He said, "You don't have to have a college degree to serve. You don't have to make your subject and verb agree to serve. You don't have to know about Plato or Aristotle to serve. You don't have to know Einstein's theory of relativity to serve. You don't have to know the second theory of thermodynamics in physics to serve. You only need a heart full of grace and a soul generated by love."

(마틴 루터킹 목사는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유명해질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위대해 질 수는 있다. 왜냐하면 위대함은 봉사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것의 나머지 구절도 알 것입니다. 그는 ’봉사하기 위해 대학 학위를 가질 필요는 없다. 봉사하기 위해 표준어를 구사할 필요도 없고 봉사하기 위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알 필요가 없다. 또한 봉사하기 위해 아인슈테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열역학 제 2법칙을 알 필요가 없다. 은혜에 충반한 가슴과 사랑으로 가득찬 영혼만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
 
In a few moments, you'll all be officially Stanford's '08.
 You have the heart and the smarts to go with it. And it's up to you to decide, really, where will you now use those gifts? You've got the diploma, so go out and get the lessons, 'cause I know great things are sure to come.

(잠시 후 여러분은 공식적으로 2008년도 스탠포드 졸업생이 됩니다.
여러분은 그에 걸 맞는 마음과 명석함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결정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재능을 어디다 사용하시겠습니까? 학위를 받았으니 바깥세상으로 나가 교훈을 얻으십시오. 왜냐하면 반드시 좋은 일들이 올 테니까요. )
 
You know, I've always believed that everything is better when you share it, so before I go, I wanted to share a graduation gift with you. Underneath your seats you'll find two of my favorite books. Eckhart Tolle's A New Earth is my current book club selection. Our New Earth webcast has been downloaded 30 million times with that book. And Daniel Pink's A Whole New Mind: Why Right-Brainers Will Rule the Future has reassured me I'm in the right direction.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함께 나눌 때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제가 가기 전 여러분과 작은 졸업 선물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의자 밑에 제가 좋아하는 책 2권이 놓여 있습니다. 에크홀트 톨의 새로운 지구라는 책은 현재 저의 북클럽에서 선정된 책입니다. 이 책의 웹캐스트는 3000만 건이나 다운로드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책 다니엘 핑크의 ‘새로운 미래가 온다. - 왜 우뇌를 가진 자가 미래를 지배하는가’는 제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지 확인시켜준 책이었습니다. )
 
I really wanted to give you cars but I just couldn't pull that off! Congratulations, '08!

(여러분에게 차를 주면 좋았겠지만 그건 제 능력 밖입니다. 축하합니다. 08년도 졸업생 여러분! )
 
Thank you. Thank you.(이건 무슨말인지 다들 아시겠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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